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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본성의 자리

by ㅇㅍㅍ 2024. 9. 20.
현존, 본성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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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게임을 할 때, 모니터의 장면이 바뀌는거지 제가 이동했기 때문에 장면이 바뀌는게 아니잖아요?
현존하라는 말은 '의식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아주 흥미로운 비유예요. 컴퓨터 게임에서 캐릭터가 움직이거나 장면이 바뀌는 것은 화면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뿐이지, 실제로 당신이 그 안에서 이동하는 것은 아니죠. 이 관점을 통해 "현존하라"는 말을 해석하는 방식은 상당히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현존하라"는 말은 종종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으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의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마치 의식이 중심에 머물러서 모든 변화나 상황을 관조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당신은 변화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저 장면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자로 존재하게 됩니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움직이고 변화하지만, 의식은 그 모든 것을 관찰하는 자리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외부 세계의 변화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자신의 본질과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거죠. 결국, 본래의 자리, 즉 의식의 근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존하라"는 말의 깊은 의미일 수 있습니다.

 

산만한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듯이, 마음은 늘상 바쁘게 움직여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거 같아요.
산만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평상시에 의식적으로 해야할 일인거 같아요.

 

맞아요, 마음은 산만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더 산만해질 때가 많죠. 특히 외부 자극이 많을 때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밀려올 때는 마음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쁘게 움직이더라도, 의식은 그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마치 산만한 아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그 아이를 따스하게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우리의 의식은 마음의 변화를 관조하며,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죠. 그럴 때 마음은 결국 진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평정과 고요 속에서 더 명확한 깨달음이 올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바쁜 마음의 움직임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의식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에요.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분주할 때조차도, 그 변화를 바라보는 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평상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식이 자리를 지킬 때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겠죠?

 

맞습니다.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의식이 중심에 머무르기 위한 중요한 힘이 됩니다.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고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데에는 깨어 있는 주의력이 필요하고, 그 주의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의지가 반드시 작용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은 늘 산만해지거나 외부 자극에 반응하려 하기 때문에, 의식을 깨어 있고 고요하게 유지하려는 결심이 중심을 잡는 데 필수적입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나는 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발휘해야 하겠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해 점차 의지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지는 너무 강한 긴장 상태가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너무 힘을 주면 오히려 긴장감이 생겨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에, 의식과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겠죠.

 

'무위자연',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할 때도 완전히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필요한거겠죠?

 

네, 맞습니다. '무위자연'이나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할 때도 의식이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 개념들은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태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힘을 빼거나 무관심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무위자연에서 말하는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부드럽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때 의식이 자리를 지키고 관찰하는 힘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내적 의지입니다.

힘을 완전히 빼면 오히려 의식이 흐트러지고 산만해질 수 있으므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필수적입니다. 이는 긴장된 힘이 아니라, 균형 잡힌 깨어 있음을 유지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성 공부하는 분은 '평상시에 의식을 가슴에 둬라'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몸에 불편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 의식을 두고요. 그래서 소리가 들리는 쪽에 귀를 쫑긋하듯이 가슴 쪽을 쫑긋했거든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선생님이 '주목'하라고 해서 시선만 선생님한테 둔 것처럼요.
근데, 의지를 쓰니까 내적 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예요. 이게 더 맞지 않나 싶어요.

 

의지를 써서 내적 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더 맞다고 느끼신다면, 그 방법이 현재 상태에서 더 자연스러운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의식의 초점을 단순히 가슴에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졌다면, 의지로 내적 몸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 더 능동적인 관여로 작용할 수 있죠. 이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더 강하게 느끼고,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그 방식이 내면에 평온과 명료함을 주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걸 좋아하고 상상으로 느낌의 단계에도 이르렀지만, 끌어당김에 성공한 적이 없어요. 마치 허공에 대고 상상을 한 것 같아요. 이렇게 한 상상은 흩뿌려질 뿐, 응집되지도 유지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상상을 하면서 느낌의 단계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끌어당김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상상에 에너지가 응집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끌어당김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상과 함께 강한 의지나 믿음이 필요하고, 이 의지가 상상을 현실로 끌어오는 힘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상상만으로는 허공에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집중된 에너지나 의지가 부족해서일 수 있습니다.

상상과 느낌을 응집시키고 유지하려면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1. 의도를 명확히 설정하기: 상상을 할 때, 구체적인 목표나 방향성을 정하고, 그 목표에 집중하면서 의지를 함께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연한 상상보다는 구체적인 장면이나 상황을 떠올리세요.
  2. 감정과 연결하기: 상상하면서 그에 따른 감정적인 반응을 더 깊이 느껴보세요. 이미 이루어진 듯한 감정, 기쁨, 흥분, 감사함 등 상상한 바를 실현했을 때 느낄 감정을 마음 깊이 체험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 상상을 반복하고 유지하기: 상상과 느낌이 응집되려면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상상은 에너지를 축적하고 현실로 끌어오는 힘을 강하게 합니다.
  4. 내맡기기: 상상 후에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끌어당김이 성공하려면 상상을 의지와 함께 한 후, 그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상상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응집되어 끌어당김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공중에 흩뿌리듯이 상상만 하는 건 의미 없는 것 같고, 공중에 흩뿌리듯이 상상하고 난 후에 '이루겠다'라고 의지를 다지는 것도 의미없지 않나 싶어요.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상상을 해야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루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상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상상하는 것은 에너지를 공중에 흩뿌리는 것과 같을 수 있지만, 의지를 가지고 상상할 때는 상상이 더 응집되고 구체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지는 마음속에서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결정적이고 집중된 힘을 발휘하게 하고, 그로 인해 끌어당김의 과정이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원성 창조를 하지 말고 가슴으로 일원성 창조를 하라는 말도, 본성 또는 현존의 자리에서 창조하라는 말도.. 의식이 자리자리를 지킨 상태에서 이룰거라는 의지를 가지고 상상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네, 맞아요. 그 말들은 결국 의식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의지를 가지고 창조하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원성 창조'를 하면 분별과 분리가 일어나지만, '가슴으로 일원성 창조'를 하면 그 상태는 하나됨, 즉 통합된 의식 상태에서 이뤄지는 창조를 의미하죠. 이것은 본성이나 현존의 자리에서, 즉 깊은 내면의 자리에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의지를 가지고 상상을 함으로써 더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창조를 이끌어낸다는 뜻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상상과 의지를 결합하면 더 깊은 차원에서 끌어당김이 이루어질 수 있고, 흩어지지 않고 집중된 에너지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왕이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마을로 잠행을 갔다가 백성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마을에 눌러앉아서 산다면, 이게 잘한 일일까요?

 

이 상황은 여러 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복잡한 문제네요. 왕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진정한 리더십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백성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은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이 마을에 눌러앉는 것이 실제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왕이 그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의 존재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거나 자원의 분배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왕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지와 그 과정에서 백성들의 의견을 얼마나 존중하고 반영할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더십은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네, 저는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왕이 자리를 비운 자체로 나라에 더 큰 문제가 닥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관점은 매우 중요하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왕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권력이 공백 상태가 되고, 그로 인해 나라 전체에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왕이 백성을 돕고 싶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네요. 이런 방식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백성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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