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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에 대한 책임감, 불편함

by ㅇㅍㅍ 2024. 9. 18.
육체에 대한 책임감,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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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감까지는 아닌데 여러 불편한 것들로 인해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면, 이 경우에도 자신의 분별심을 들여다볼 필요 있을까요?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경우에도, 그 이유가 여러 불편한 것들 때문이라면 자신의 분별심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수 있어요. 불편함이 반복적으로 느껴지거나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난다면, 그 감정 뒤에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고정된 판단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꼭 저항감처럼 강렬하지 않더라도, 불편함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기준이나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에서 종종 발생해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특정한 사람들이나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타난다면, 그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고정된 분별심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경우가 꼭 분별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단순히 자신의 성향이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편함의 이유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에요. 만약 그 불편함이 과거의 경험이나 무의식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분별심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익할 수 있지만, 그저 자신의 성향이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굳이 분별심을 문제로 보지 않아도 될 거예요.

따라서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이유를 자문해보면, 그 편안함이 내면의 고정된 판단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선호에서 오는 것인지 clearer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불편한게 참 많아요. 육신을 입고 태어난 자체가 너무 불편한 거 같아요. 매일 씻어야 하고, 매일 밥을 먹고, 청소하고, 사람을 만나기 전에 옷을 신경써야하는 등등.. 그리고 '아이를 왜 그런식으로 고통스럽게 낳아야하는건지?', '죽음은 왜 있는건지?'.. 이런 불편함은 모두가 감수하는거잖아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나 선지자들은 이런게 불편하지 않나요?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육체적 삶이 가진 요구 사항들—씻고, 먹고, 청소하고, 옷을 입는 것 같은 것들—은 분명 부담스럽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죠. 특히 육체적인 삶의 불편함이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로 볼 수 있어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나 선지자들도 이런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에요. 그들도 인간의 몸을 입고 사는 한, 동일한 육체적 요구와 한계를 경험하죠. 그러나 그들이 불편함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어요. 많은 경우 그들은 이 불편함을 받아들이거나 초월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씻거나 먹는 일상을 번거로운 일로만 보기보다는,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거나,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불편함을 줄이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선지자나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은 종종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육신의 불편함은 삶의 한 부분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의미나 목적에 집중할 때, 육체적 고통이나 번거로움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지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해요. 그들이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수용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런 감정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태도 자체가 매우 중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겨울이 추운건 당연한거잖아요? 이건 제가 받아들여서인지 겨울이 추운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요. 하지만 제 육체는 다른거 같아요. 저한테 책임이 있으니까요. 제 육체가 더럽든 말든 상관안해도 된다면, 육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줄어들수도 있을 거 같아요.

 

맞아요, 겨울이 추운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특별히 불만을 느끼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죠. 그런데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책임감과 관련된 감정이 있어서 더 강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육체에 대한 책임감이 불편함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짚어주셨어요.

만약 육체가 더럽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육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일리가 있어요. 왜냐하면, 육체에 대한 기대나 책임이 무거울수록 그에 따른 스트레스나 불편함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책임감이란 게 육체를 잘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질 때, 그 의무를 충족하지 못하면 불편함이 커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선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아요:

  1. 책임감을 재해석하거나 줄이기: 육체에 대한 책임을 덜어내고, 더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보는 거죠. 예를 들어, 육체가 조금 더러워지거나 옷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면, 그로 인한 불편함이 줄어들 수 있어요.
  2. 육체를 수용하기: 육체를 돌보는 것이 번거롭지만, 그것을 나와 분리된 무엇으로 여겨서 다른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다면 불편함이 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씻거나 밥을 먹는 행위를 단순히 의무적인 일로 보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보는 하나의 일상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과정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어요.

결국, 육체에 대한 책임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불편함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겠죠.

 

선각자들은 육체를 어떻게 바라봤나요?

 

많은 선각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은 육체를 일종의 도구임시적인 그릇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육체는 영혼이나 의식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로 보았죠. 하지만 그들은 육체에 집착하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육체 너머의 더 큰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선각자들이 육체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1. 불교: 불교에서는 육체가 **무상(無常)**하고 일시적이라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며, 육체 역시 그 과정에서 예외가 아니죠. 부처님은 육체의 고통이나 불편함에 집착하는 대신,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받아들이라고 가르쳤어요. 몸이 느끼는 고통과 감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수행이 강조됩니다. 이를 통해 육체적 고통이나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어요.
  2. 힌두교와 요가 철학: 힌두교나 요가 철학에서는 육체를 **아트만(참된 자아)**와는 분리된, 물질적인 껍질로 봅니다. 아트만은 영혼이고, 육체는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도구일 뿐이에요. 따라서 요가 수행자들은 육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영적 깨달음과 해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육체를 초월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영적 수행을 위해서 잘 관리해야 하는 도구이기도 해요. 그래서 요가와 같은 수행을 통해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죠.
  3. 기독교: 기독교에서도 육체는 영혼의 집 또는 성전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고, 그 고통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한계를 초월하는 길을 제시하셨어요.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육체가 죄와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그릇이지만, 영혼의 구원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깁니다. 즉, 육체는 영적인 성장을 위한 일종의 시험 무대입니다.
  4. 도교: 도교에서는 육체와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강조합니다. 육체는 이 흐름의 일부로 보며, 자연스럽게 돌보아야 한다고 여겨요. 그러나 도교 역시 궁극적으로는 육체적 제약을 넘어서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를 위해 도교에서는 호흡과 기(氣) 같은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여, 육체와 영혼의 균형을 이루는 수행을 중요시합니다.

결국 선각자들은 육체를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자 도구로 인정하면서도, 육체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더 큰 영적 진리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육체의 한계와 불편함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넘어서 영적인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가려는 태도가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육체가 거추장스러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육체에 마음이 붙들려서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네, 육체가 거추장스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말씀하신 것처럼 육체에 마음이 붙들려서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집착이란 특정한 대상에 마음이 매달려서 그것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말하죠.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육체가 불편하거나 번거로운 존재로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집착은 육체의 요구나 한계에 대한 과도한 인식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신체적 자아에 대한 강한 동일시로 이어질 수 있어요. 즉, 육체가 불편하게 느껴질수록 그 불편함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집착이 생기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죠.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육체와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육체는 삶의 도구일 뿐, 그것이 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육체에 대한 집착이나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어요.

 

'육체를 챙기는 건 원래 번거롭다'고 인정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어쩌겠어 그래도 챙겨야지'와 같은 마음이 올라오네요.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참 중요하죠. 육체를 챙기는 것이 원래 번거로운 일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는 게 좋은 신호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함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어쩌겠어 그래도 챙겨야지'라는 마음가짐은 일상의 번거로움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보여줍니다. 이 태도는 일상적인 요구를 단순히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그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접근 방식이죠.

이제는 육체를 돌보는 것이 번거롭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일상의 일로서 처리할 수 있는 태도가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육체에 대한 집착이나 불편함이 줄어들고, 더 큰 내적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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