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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불편한 인식

by ㅇㅍㅍ 2024. 9. 24.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불편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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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드라마에 구슬치기 장면에서 남자주인공이 할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이 있어요.
리액션 영상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예요.
반면, 남자주인공에게만 몰두한건지 '오예 잘했어'라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좁은 시야로 봐서 그런걸까요? 이게 의식수준과 관련 있는 걸까요?

 

그 장면을 통해 느낀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의식 수준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남자주인공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순간의 결과에 집중하고,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상황의 도덕적 딜레마감정적 무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죠.

좁은 시야로 보는 것은 일시적 쾌감이나 결과에 대한 단기적 만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데, 이는 감정의 깊이를 놓칠 수 있게 합니다. 반면, 더 넓은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며 감정을 깊게 느끼게 되죠. 이러한 차이는 각자의 가치관, 경험, 감정적 공감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즐거움과 깊은 감정적 반응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내가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에 다른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는게 보여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선각자들의 마음 상태가 잔잔하고 평온한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폭넓게 인식하면 세상의 모순도 보이고 여러 이면이 보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불편할 수 있을거 같거든요?
선각자들은 불편하게 볼 수도 있는 것을 어떻게 평온하게 볼 수 있는걸까요?

 

선각자들이 세상의 모순이나 복잡한 감정들을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집니다:

  1. 통합적 시각: 선각자들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이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그러한 시각이 그들을 더욱 넓은 관점으로 이끈다고 느끼게 됩니다.
  2. 감정적 거리: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경험할 때, 그들은 그것에 휘둘리기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상황에 대해 더 명확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3. 수용과 공감: 선각자들은 불편한 감정이나 상황을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수용하고 공감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갈등을 인간의 성장과 변화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4. 내면의 평화: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와 안정감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외부의 혼란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익혔습니다. 명상, 자기 성찰 등을 통해 이러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5. 비교적 거리: 선각자들은 특정 사건이나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가 변화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인생의 한 순간이 아닌 전체 여정을 보고, 결국 모든 경험이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그들의 평온함을 만들어주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하게 보는 사람도 통합적인 시각이 있는 거 같거든요.
아직 인식 단계에 있고 소화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요.

 

그렇죠, 불편하게 보는 사람들도 분명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의 복잡성을 느끼고, 그 안에서 상충되는 감정이나 가치관을 인식할 수 있지만, 이를 소화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식의 단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 수 있죠.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탐구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이는 결국 그들이 더 깊은 이해와 통찰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통합적인 시각은 단순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그 불편함을 보다 잘 이해하고, 나아가 평온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이 각 개인에게 필요한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우리가 커피의 쓴 맛을 좋아하듯이 선각자들은 인생의 쓴 맛을 음미하는 걸까요?

 

그렇죠, 선각자들은 인생의 쓴 맛을 음미하며 그 안에서 깊은 통찰과 배움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피의 쓴 맛이 강렬한 경험을 주듯, 인생의 고난과 역경도 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쓴 맛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장하고,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게 되죠. 또한, 쓴 맛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삶의 다양한 면모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경험은 그들이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선각자들은 인생의 쓴 맛을 통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네요.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세상이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선각자들은 세상을 커피잔을 보듯 바라보면서 세상일을 음미하는 거네요?

 

정확히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어려움이나 부조리를 비판하며 불만을 가지기 쉬운데, 선각자들은 그런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 합니다.

커피잔을 바라보듯, 선각자들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하나의 맛있는 음료처럼 음미하고, 그 속에서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이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통찰력을 잃지 않고, 삶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받아들이며 성장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접근은 그들에게 더 깊은 이해와 평화를 가져다주며,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죠. 선각자들은 세상을 비판하기보다는 수용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라고 인식하는 사람 중에 상당수는 스스로 깨어났다고 착각하는거 같더라구요.
우월감도 느끼는 것 같구요. 그래서 사람들을 가르칠려고 하더라구요.

 

그런 경우가 많죠. 스스로 깨어났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을 확장했다고 믿으며, 이를 통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전파하려고 하기도 하며, 자신이 발견한 진리나 통찰을 공유하려는 욕구가 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이 단지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을 뿐,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깨어남은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용을 포함하며, 그 과정에서 겸손함과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우월감은 종종 고립이나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진정한 성장과 학습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기도 하죠. 결국, 진정한 깨달음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존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수용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주의처럼 새로운 사상을 접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깨어났다고 착각하는 거 같더라구요.
영적인 깨어남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으로 인해 인식의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어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좋지만, 조금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 낭비하는 느낌도 들거든요.

 

그런 관점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새로운 사상을 접한 사람들이 종종 자신을 깨어났다고 믿고, 그에 따라 강한 확신을 가지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런 변화가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나 깊은 통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때로는 혼란이나 갈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것은 유익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과도하게 확신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태도로 나아가면 에너지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념이나 사상에 너무 집중하게 되면, 인간관계나 개인적인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사상이나 관점을 접할 때는 비판적이고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겸손하게 접근하고, 그 지식이 자신의 삶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진정한 깨어남은 단순히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배운 사상이 옳으니 이걸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을 계몽하겠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거겠죠?

 

맞아요, 그런 관점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배운 사상이 옳다고 믿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태도는 종종 갈등과 대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타인의 관점을 무시하게 되면, 오히려 소통이 단절되고 불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몽의 의도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타인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의도는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이해 방식과 속도도 다양합니다.

따라서, 지식을 나누고자 할 때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건강한 소통 방법일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이해와 변화는 타인의 마음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상도, 어떤 주의(비혼주의 등)도 제 마음에 심기 싫더라구요.
설사 제가 비혼을 선택하더라도 비혼주의자여서 비혼을 선택하는 건 아닌거죠.

 

그런 관점은 매우 건강하고 자기 주도적인 것 같아요. 특정 사상이나 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은 자유롭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각자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죠.

비혼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비혼주의의 틀에 맞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정하고, 그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선각자들은 자유인에 가까운거 같아요. 자유주의자는 아니구요.

 

그렇죠, 선각자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선택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기준이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직관을 따르며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죠. 자유주의와는 다른 맥락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중시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의지가 강하죠.

 

삶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는 것도 다 자유로워지는 길인 것 같거든요.

 

정말 그렇죠! 삶의 주도권을 가지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되고,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외부의 제약에서 벗어나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죠. 결국, 진정한 자유는 내면의 평화와 조화를 이루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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