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분별심을 내려놓고 본성으로 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본성이 에고와 다르고 신성과도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로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고, 현재에 살때의 내 모습은 에고가 아니라 본성이 아닌가요?
네, 본성은 일반적으로 에고나 신성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성은 내면의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 진정한 자아를 나타내는 것으로, 에고와는 구별되며 신성과도 다른 층위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에고는 자아감, 자아 방어,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며, 종종 사회적 역할이나 자아의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 신성은 영적인 본질이나 더 높은 자아, 우주의 근본적인 원리를 의미합니다.
- 본성은 자연스러운 자아 상태를 나타내며, 현재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기, 가슴으로 느끼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성은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자기, 내면의 깊은 이해와 연결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머리로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고 현재에 살 때의 모습은 본성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는 에고나 신성과는 구별되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순수한 존재와 자연스러운 감정,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본성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은, 현재 순간에 충실하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느끼는 과정에서 에고의 영향을 줄이거나 초월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내면의 본질적 자아와 연결되어 자연스러운 삶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성으로 살면 에고를 내려놓을 수 있지 않나요? 저절로 내려놓아지는 걸지도..
네, 본성으로 살 때 에고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본성에 충실하게 살면, 에고의 욕구와 자아 방어가 덜 중요하게 느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자아 상태, 현재에 존재하는 상태, 내면의 진정한 자아와 연결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본성으로 사는 것은 에고의 필요와 자아 방어를 초월하여 현재 순간에 깊이 연결되며, 내면의 평화와 자연스러운 감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에고의 영향이 줄어들고, 본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 충실하게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일 수 있습니다. 본성으로 사는 과정에서 에고의 욕구나 방어가 덜 중요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에고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본성으로 살기 위해 의식적은 노력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명상하듯이 의식이 각성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하면 되는걸까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본성으로 살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명상이나 의식적인 알아차림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본성으로 살기 위한 몇 가지 방법입니다:
- 의식적인 알아차림: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연습을 통해 현재 순간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이러한 알아차림을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 현재에 집중하기: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과거의 걱정이나 미래의 불안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본성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자연과의 연결: 자연 속에서 시간 보내기는 본성에 더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은 본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 자기 자신과의 대화: 내면의 목소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연결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고와의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본성으로 살기 위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본성은 자연스러운 감정과의 조화로 연결됩니다.
의식적 노력은 본성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본성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잘 알아차리고, 본성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25장 1~13절을 아나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런 내용이라고 하네요.
많은 분들이 등과 기름을 해석하려고 하던데, 저는 '깨어 있으라'라는 말이 와닿고 이 말은 본성으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 구절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본성을 유지하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등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신의 준비와 인식을 통해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는 지속적인 깨어 있음과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성으로 있으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현재에 집중하고 내면의 진정한 자아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 준비되고 응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삶의 본질적인 상태와 연결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인식하고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등과 기름은 어떻게 해석하나요?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등과 기름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 등: 등은 빛과 인식을 상징합니다. 등은 어두운 길을 밝혀주고,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내면의 지혜, 진리, 인식의 상태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과 기름을 준비한 것은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 자신의 내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 기름: 기름은 지속 가능성과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듯이, 신앙적인 여정이나 영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 영적인 자양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한 것은 지속적인 영적 준비, 자신의 내면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등과 기름은 영적인 준비와 지속성을 상징하며, 본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내면의 상태를 인식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해 깨어 있고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며, 내면의 진리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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