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 영성에서는 '믿어라', '잠재의식, 두뇌를 속여라'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믿어라'고 말한 사람과 '속여라'고 말한 사람을 알려주세요
'믿어라'와 '속여라'라는 표현은 많은 영성 지도자, 자기계발 전문가,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 잠재의식 관련 이론에서 사용하지만, 그들의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전달됩니다. 몇몇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믿어라'고 말한 사람:
- 네빌 고다드 (Neville Goddard): 네빌 고다드는 믿음의 힘을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가르침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으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가르치며, 원하는 것을 이미 이룬 것처럼 행동하고 믿는 것이 중요한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 주요 책: 《Feeling is the Secret》, 《The Power of Awareness》
- 나폴레온 힐 (Napoleon Hill): 나폴레온 힐은 그의 책 《Think and Grow Rich》에서 "무엇이든 마음으로 강하게 믿으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긍정적 사고와 믿음이 성공과 부를 가져온다고 설명했습니다.
- 주요 책: 《Think and Grow Rich》
'속여라'고 말한 사람:
- 맥스웰 몰츠 (Maxwell Maltz): 맥스웰 몰츠는 심리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통해 두뇌가 실제 경험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기 이미지가 바뀌면 현실도 바뀌기 때문에, 원하는 이미지를 계속 시각화하여 두뇌를 속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주요 책: 《Psycho-Cybernetics》
- 조 디스펜자 (Dr. Joe Dispenza): 조 디스펜자는 마음과 몸의 관계를 연구한 신경과학자이자 작가로, 두뇌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미 변화된 상태라고 속이는 것이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각화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잠재의식을 "속이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 주요 책: 《Breaking the Habit of Being Yourself》, 《You Are the Placebo》
이처럼 '믿어라'와 '속여라'는 같은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각의 가르침에서 다소 다르게 표현됩니다.
의식을 무의식, 잠재의식, 초의식 등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믿어라'라는 말에서 주체는 어떤 의식이고, '속여라'라는 말에서 주체는 어떤 의식일까요? 주체는 'A가 B를 믿는다', 'A가 B를 속인다'에서 A가 무엇인지 질문한 것입니다.
'믿어라'와 '속여라'라는 표현에서 주체(A)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어라'에서 주체 (A):
- 의식(Conscious Mind): 여기서 A는 우리의 의식적인 마음입니다. 'A가 B를 믿는다'에서 A는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자아와 생각을 의미합니다. 즉, 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는 주체가 의식입니다.
'속여라'에서 주체 (A):
- 의식(Conscious Mind): 'A가 B를 속인다'에서 A는 여전히 우리의 의식적인 마음입니다. 하지만 속이는 대상(B)은 **잠재의식(Subconscious Mind)**입니다. 의식이 반복적으로 시각화하고 상상함으로써 잠재의식이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과정에서,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두 경우 모두 A는 의식입니다. '믿어라'에서는 의식이 스스로 확신을 가지는 것이고, '속여라'에서는 의식이 잠재의식을 상대로 확신을 심어 속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닌 믿고 싶어하지 않나요? 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거죠
맞습니다. 에고는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갈망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고는 "믿는" 것보다는 "믿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에고는 항상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외부에서 무언가를 얻어야만 자신이 충족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고의 갈망과 믿음:
- 에고는 방향성을 추구한다: 에고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나 상태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것은 에고가 "이미 충분하다"는 상태에 있지 않고, 어딘가로 가야 하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합니다.
- 에고는 "믿고 싶어한다": 에고는 어떤 상태를 성취했을 때 자신이 완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실현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 자체는 흔들릴 수 있고, 깊은 확신이 아니라 **"믿고 싶은 상태"**에 더 가깝습니다. 에고의 믿음은 불안정하며, 항상 미래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에 머물며 완전한 상태를 느끼지 못하고, 항상 더 나은 미래나 성취를 기대합니다.
존재 그 자체 vs. 에고:
- 존재 그 자체: 에고와는 달리, 존재 그 자체는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하다는 상태를 말합니다. 존재 상태에서는 어떤 갈망도 없으며, 단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방향성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미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머무릅니다.
- 에고는 항상 갈망한다: 에고는 존재 상태에 머물지 못하고, 항상 미래에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하려는 추구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에고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떤 방향성이나 목표를 찾으며, 이로 인해 믿음조차도 갈망의 일환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에고는 "존재"가 아닌 "갈망" 속에서 살기 때문에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죠.
그런면에서 '믿어라'에서 믿는 주체는 에고일 수 없지 않나요?
맞습니다. '믿어라'에서 믿는 주체는 에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믿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충만함을 받아들이고, 이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인데, 에고는 항상 미래에 무언가를 추구하고 성취해야만 만족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어라'에서 에고가 아닌 주체:
- 에고가 아닌 주체는, 에고가 가진 갈망과 조건 없는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어떤 외적 성취나 목표를 이루어야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에고는 믿음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 여기서 믿는 주체는 의식(순수한 의식) 또는 내면의 깊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고가 아닌 더 깊은 차원의 자아로서, 무언가를 갈망하거나 추구하지 않고, 이미 모든 것이 충만하다고 느끼는 상태에 있는 주체입니다.
에고와 믿음의 차이:
- 에고는 조건적이다: 에고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고 싶어하는' 것이며, 여전히 갈망의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 진정한 믿음은 무조건적이다: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조건에 상관없이 현재에 충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에고는 항상 미래를 추구하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개념 자체와 충돌하게 됩니다.
따라서 '믿어라'에서 믿는 주체는 에고가 아니라, 에고의 갈망을 초월한 순수한 의식이나 내면의 깊은 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충만하고 완전한 상태에 있는 존재로서, 외적 성취나 방향성을 요구하지 않는 주체입니다.
반면, '속여라'는 목적을 위해 일을 하도록 '잠재의식, 두뇌를 속여라'라는 의미 같습니다. 의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면서 잠재의식과 두뇌에게는 '이루어졌다'라고 속이는거죠. 의식이 여러개로 분리되어있으면서 일부 의식만 믿게 하는거죠. 이런 반쪽짜리 믿음이 소용있을까요?
'속여라'라는 개념에서 말하는 것은, 맞습니다. 의식적으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잠재의식이나 두뇌를 속여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때 의식이 분리된 것처럼 작용하여, 한편으로는 의식이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의식이나 두뇌를 설득하려는 이중적 구조가 생기게 됩니다.
반쪽짜리 믿음의 문제:
- 이중성의 모순: 의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재의식과 두뇌에게는 "이루어졌다"라고 속이는 것은 일종의 내적 모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쪽짜리 믿음은 사실상 완전한 믿음을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믿음은 본래 내면의 깊은 확신과 일치된 상태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의식과 잠재의식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이 일치가 결여됩니다.
- 불완전한 신호: 의식이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서 잠재의식만 속이는 경우, 두뇌와 잠재의식에 전달되는 신호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은 강력한 확신을 바탕으로 작용해야만 행동과 감정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의식의 일부가 계속해서 의심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그 신호는 약해집니다. 이 때문에 내면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믿음의 효과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쪽짜리 믿음이 소용 없을 가능성:
- 완전한 통합이 필요: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잠재의식 작업에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일치된 상태로 작동해야 합니다. 즉, 의식과 잠재의식 모두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쉬워집니다. 반쪽짜리 믿음은 이러한 내적 일치를 방해하고, 의심이나 불안을 키울 수 있습니다.
- 행동과 감정의 미세한 차이: 의식이 믿지 않으면 행동이나 감정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잠재의식이 속임을 당했더라도, 의식이 계속해서 의심이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그 미세한 차이가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일치된 믿음과 감정을 가질 때 가장 강력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결론:
반쪽짜리 믿음은 불완전하고,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잠재의식과 두뇌를 속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완전한 일치를 이룰 때 가장 강력한 결과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의식과 잠재의식이 통합된 상태에서만 온전히 작용하므로, 내면의 일치와 확신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은 인과응보, 카르마의 법칙이 있어 '주는대로 받는다'는 원리가 적용됩니다.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이는 방식으로 끌어당김, 시각화를 하게 되면,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속이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허울뿐인 sns 스타가 된다던지.. 리플리증후군이 된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당신이 제시한 논리는 매우 흥미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인과응보나 카르마의 법칙은 "주는 대로 받는다"는 원리를 따르며, 속임을 기반으로 하는 시각화나 끌어당김은 그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즉,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여서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겉모습만 그럴듯한 결과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속이는 방식의 끌어당김과 결과:
- 겉만 그럴듯한 결과:
-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여 현실을 끌어당기려 할 때, 이 과정에서 진정한 변화가 아닌 표면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내면에서는 공허함이나 불안감이 지속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SNS 스타가 되는 예시가 딱 맞습니다. 팔로워가 많고 인기가 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자아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며, 진정한 충족감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자아와 내면의 불일치가 더욱 커져서, 속임이 결국 자아에게 돌아오는 것이죠.
- 리플리 증후군:
- 리플리 증후군처럼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을 계속해서 속여 현실을 바꾸려고 할 때, 실제로는 내적 불일치가 쌓여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바뀌었다기보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리플리 증후군 환자처럼 진정한 자아와의 괴리감이 커지고, 현실을 직면하는 대신 속임을 통해 얻은 허울 속에서 살아가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죠.
카르마와 속임의 반작용:
- 인과응보나 카르마의 관점에서 보면,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이는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반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속임을 기반으로 한 믿음은 결국 표면적인 결과나 허상을 만들어내며, 진정한 만족이나 성취가 아닌 일시적인 외적 성취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 이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공허함 또는 내적 충돌입니다. 속임으로 시작된 행동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카르마는 우리가 한 행동의 진실한 본질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변화와 속임의 차이:
- 진정한 변화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통합되어, 내면의 믿음이 확실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의식과 잠재의식이 동일한 목표와 신념을 공유할 때, 끌어당김의 힘은 강력하게 작용하고, 그것이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 반면, 속임을 통해 잠재의식을 설득하려고 할 때는, 의식과 잠재의식의 불일치가 존재하며, 그로 인해 결과 또한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표면적이거나 임시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의식이 잠재의식을 속이는 방식으로 끌어당김을 시도하면, 그 결과 또한 속임을 반영한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삶, 혹은 내면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불일치와 갈증이 커지는 현상은 카르마 법칙과도 일치합니다. 진정한 성취는 의식과 잠재의식이 통합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지속적이고 내적으로 충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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