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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유보다 자연스러움 |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by ㅇㅍㅍ 2023. 6. 24.
이제는 자유보다 자연스러움 |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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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잠시 인터넷 기사를 봤습니다.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회사 근처 단골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커피들이 보였다. 평소 늘 마시던 것들.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단정한 차림을 한 직원 앞에 섰다. 그가 내게 물었다

www.msn.com

 

다음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입니다.

마침 동네 초등학생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손에 쥔 컵엔 떡볶이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발그레 한 소스가 너무 맛나 보였다.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정말이에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나)

"(움찔)네에."(움찔한 초등학생)

"죄송한데…혹시 이 떡볶이, 어느 가게에서 샀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나)

"아, 여기 짱 맛있어요. 쭉 가시면 O떡볶이라고 나와요!"(신나서 알려주던 초등학생)

고맙다고 인사하고 거기로 향했다. 동네인데도 처음 가보는 골목이었다. 맨날 가는 데만 참 많이 다녔구나 싶었다. 가게에 들어갔다. 떡볶이 2500원어치, 미니 치킨 2000원 어치를 시켰다. 양이 많이 나왔다.
쫄깃하면서도 알맞게 익어 보들보들한 떡볶이. 입에 넣는 순간, 오래 넣어둔 어딘가의 기억이 꺼내어졌다. 학원이 끝나면 책가방을 메고, 한 접시에 1000원 밖에 안 했었고, 친구와 붙어먹으면 세상 행복했던. 딱 그 맛이었다. 순식간에 다 털어먹고, 2000원 어치를 더 포장해달라고 했다.

 

경험은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주지만, 저는 꼭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위 글에서 처음엔 안먹어보던 음료를 주문하고, 새로 나온 음악을 전부 재생하는 등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억지스럽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다양한 시도가 핵심이 아니라 '내맡김'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맛집을 찾는 등의 실패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내려놓고 세상과 어우러져 편안하게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말도 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별 것 아닌데, 저는 왜 이게 좋아보이고 '나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저는 오래전부터 자유를 꿈꿨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요.

요즘 들어, 이제서야 내가 뿌리를 내렸다는 느낌이 들고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라는 느낌도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단계를 지난 건지, 이제는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찾고 싶은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늘 갑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벗고 세상과 어우러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방어기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건지 '여자들은 다 그래', '내 친구들은 다 그래'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하곤 합니다.

저는 이 방식을 선호하지 않아서 저자신을 내세우고 저를 주어로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막에 갑옷을 입고 홀로 서 있는 느낌으로 자신을 내보였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저 사이의 선을 명확하게 긋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긋고 싶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선을 긋는 것이 힘들었다는 의미거든요.

이런 저의 방식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을 자극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정이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야 그들의 인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제가 자기들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제 기준에서는 악의든 호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자주 썼던 비유는 '고양이가 죽은 쥐를 매일 가져다주면 그게 고맙냐?'는 거였습니다. 고양이가 호의로 그런 거라는 건 알지만, 난 그 호의가 달갑지 않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마음은 고맙다고 표현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황을 빨리 종결하고 싶은 마음에 성급하고 경솔하게 대응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가 돈이 될까?'라는 궁금증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글을 쓰면서 제 삶과 제 마음을 음미하듯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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